여느 누구처럼 나 역시도 유년 시절엔 세계 여행을 꿈꾸었고 대학생이 되면 한 번 쯤은 유럽에도 가 볼 줄 알았다. 대학교만 가면 마법처럼 모든 것이 잘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어린 소년이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마법처럼 성인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때 그 꿈들과 환상들은 스무살을 기점으로 매 해 시들어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4년쯤 하릴없이 학교를 다니다보면 새로운 스릴같은 건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유 같은 것들. 다시 사랑에 빠지는 환상 같은 건 실연의 괴로움에 압도되어 힘도 쓰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손을 놓아버린다.
매일 모니터로 무엇이든 소비해대며 그래도 니체니 뒤르켐이니하는 철학자들 이름이나 외고, 반 고흐나 키리코, 라파엘로 같은 화가들에 대한 비평을 읽으며 애써 대학놀음이나 해댔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언제나 편안한 도피처였다. 그들도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반 고흐는 일생 한 작품밖에 팔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 (유일하게 팔렸던 작품인 ‘Red Vineyard’는 그의 동생 테오가 사주해 구입된 작품이니 실제로는 단 한 작품도 팔지 못 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 푸쉬킨 뮤지엄에 가면 볼 수 있다. 아주 아름다운 작품이다.) 입체파니 르네상스니 하는 것들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인상주의 작품들은 그저 보고 좋다하면 그만이다. 반 고흐는 내 영웅이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도 그런 도피처들 중에 하나였다. 캠퍼스 가로등 아래 아무렇게나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길 위에서’를 읽으면 아 나는 왜 그 시절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하는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가득 채웠다. 혁명의 시대에 히피가 되어 내일의 일일랑 내일로 미뤄두고 매일 마약이나 섹스를 하며 하루를 보내도 그 시절엔 모두 용서가 되었겠지하는 망상도 가끔 했다.
이쯤되면 스스로를 간접체험을 통해 인생을 소비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소비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비난하는 게 맞다) 어찌됐건 욕망을 거세시켜 겨우 활자나 픽셀로 가득한 모니터로 허황된 인생을 체험 하는 일은 과연 인생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찌된일인지 나는 무엇이든 무력하게 소비하고 있었다.
4년 동안 간간이 여행도 다녔지만 어딘가 충족되지 않은 찝찝한 기분뿐.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은 진부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필요한 일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뜸해 겨우 근황이나 학업을 주제로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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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에 친구와 캠퍼스를 걷다가 좋아하는 화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얼른 반 고흐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자기도 프랑스에 갔을 때 반 고흐 그림을 보고 감동받았다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반 고흐 작품에 대해 책에서 읽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보지도 못한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바로 그 주에 런던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반 고흐 그림을 눈으로 보려고. 돈이야 없었지만 노트북을 팔기로 했다. 백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 비행기표값 50만원은 노트북 파는대로 갚고 남은 50만원으로 한 달간 여행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잭 케루악이나 닐 캐시디처럼 무전에 히치하이킹을 하고, 어떤 구원적인 의미의 유랑을 기대하며, 소비당한 내 청춘을 어떻게든 돌려받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딘 모리아티 역의 오랜 친구와 함께
(정확히는 내가 딘 모리아티 역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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